[평창]'9번 코스'에 사는 '악마' 물리쳐야 '金' 보인다

2018-01-11 21:15:30



'악마가 산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봅슬레이·스켈레톤 선수들은 해발 930m에 위치한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 스타트 지점에서 경기를 시작한다.

내리막으로 구성된 1번부터 8번 코스를 차례로 내려오는 순간 선수들은 '악마'를 만나게 된다. 바로 9번 코스다. 사실상 직선 구간이고 각도가 10˚ 안팎이라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구간이다. 그러나 9번 코스를 타본 선수들은 혀를 내두른다. '신성'에서 '황제'가 된 윤성빈(23·강원도청)과 스켈레톤 금메달을 다툴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도 지난해 3월 평창 트랙을 경험한 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9번 커브를 콕 집어 "선수들이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곳이 아닌 데서 커브가 나타나 놀라게 된다"고 그 섬뜩한 느낌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9번 코스가 '악마'로 불리는걸까. 악명을 얻은 배경에는 놀랄만한 반전에 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시각적으로는 선수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좁은 8번 코스를 지나 9번 코스에 돌입하면 뻥 뚫린 직선구간이 펼쳐진다. 그러나 속임수에 불과하다. 미세한 굴곡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봅슬레이 파일럿과 스켈레톤 선수들의 주행기술과 경험이 없으면 9번 코스를 통과하면서 우측과 좌측 벽면에 연달아 부딪히게 된다. 시간 단축이 어려워진다. 촌음을 다투는 시간 경쟁에서 악마의 덫에 사로잡히는 순간 좌절이다.

선수들을 딜레마에 빠뜨리는 코스다. 이익주 봅슬레이·스켈레톤 종목 담당관은 "9번 코스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9번 코스에서 좌우 부딪힘 없이 일직선 주행을 하기 위해선 8번 코스에서부터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선수들이 딜레마에 빠진다. 속도를 줄이면서 9번 코스에 진입하게 되면 썰매 속력이 시속 90~100㎞로 떨어져 기록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더 큰 화를 입게 될 수 있다. 썰매가 벽면에 충돌하기 때문에 기록이 더 나빠질 수 있다. 심지어 9번을 통과하자마자 10번 코스로 진입하는 순간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8번에서 9번 코스로 진입하는 구간이 가파르게 꺾여있기 때문에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썰매가 밀리게 된다. 썰매가 얼음 위에 놓여 있어야 하는데 날 자체가 밀리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일상 생활에서 차량으로 예를 들어보자. 고속도로를 달리다 톨게이트로 빠져야 하는 지점의 굴곡이 가파르면 당연히 속도를 줄여 진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속도를 너무 줄이게 되면 통과 후 다시 속도를 올리는 동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진입하면 관성에 의해 자칫 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날 수 있다.

결국 9번 코스를 부딪힘 없이 얼마나 일직선으로 통과할 수 있느냐가 10번 코스와 11번 코스를 잘 통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얘기다. 봅슬레이, 스켈레톤 등 슬라이딩 종목은 0.01초차의 승부다 보니 최대한 속도를 살리며 세밀한 주행을 해야 한다.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최대한 많이 트랙을 타보고 감각을 익히는 것 뿐이다. 9번 코스 진입시 어느 정도로 감속시키고 어느 라인을 타야 충돌을 피할 수 있는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혀야 한다. 그런 면에서 경기장을 홈으로 쓰는 봅슬레이 2인승의 원윤종(강원도청·33)-서영우(경기연맹·27)와 스켈레톤의 윤성빈은 큰 이점을 안고 있다. 경쟁자들보다 이미 트랙을 많이 타봤기 때문이다. 이 용 봅슬레이·스켈레톤대표팀 감독의 목표는 올림픽 전까지 1000번 주행이다. 선수들이 눈 감고도 트랙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태우겠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그래서 슬라이딩 종목은 홈 이점이 크다"고 인정했다. 20년 이상 살고 있는 동네를 활보하는 것과 초행인 사람의 차이다. 이 담당관은 "놀이동산에서 청룡열차를 처음 타는 사람과 많이 타본 사람이 느끼는 차이라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라이벌들은 지난 11월 2차 테스트 이벤트(2주) 이후 1월 말~2월 초 입국해 다시 올림픽 슬라이딩센터를 주행하게 된다. 약 12~13일 정도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 전까지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대표팀은 안방 이점을 살리기 위해 최대한 많은 주행 경험을 해야 한다. 남은 시간은 보름 뿐이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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