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먹을개는 없다?…부쩍 느는 반려견, 사라지는 보신탕

2018-05-20 08:56:32

이따금 비가 내리고 쌀쌀해 얼큰한 국물이 당기는 날씨였던 18일 오후 1시께. 서울 서초구의 '40년 전통' 보신탕집은 유명세가 무색할 만큼 한산했다.



열 개 남짓한 테이블 중 세 테이블에만 손님이 두 명씩 있었고, 손님은 모두 60대 이상 노년층이었다.

메뉴판에는 얼핏 봐서는 개고기인지 알 수 없게 '수육', '전골' 등이 적혀 있었고 '보신탕'과 함께 '삼계탕'도 팔고 있었다.

종업원은 "삼계탕 먹는 사람이 늘었다"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보신탕 많이들 드신다"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오랜 단골로 보이는 손님들은 한산한 가게 안을 보며 "요새 '개 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네"라며 저마다 푸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시내 보신탕집은 2005년 528곳에서 2014년 329곳으로 줄었다. 10년 만에 전체 40%에 달하는 보신탕집이 문을 닫거나 업종을 바꾼 것이다.

사실상 유일한 서울 시내 개고기 시장인 제기동 경동시장에는 지난해 기준으로 개고기 판매 업소가 5곳만 남았다. 그마저도 3곳은 개고기를 팔기만 하고, 개고기 도축까지 하는 곳은 2곳뿐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보신탕집이 줄어드는 이유는 세대가 바뀌면서 개고기와 보신탕을 먹지 않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동물권리단체인 동물해방물결과 'LCA(Last Chance for Animals)'가 최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 81.2%가 '지난 1년간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답했다.

'개고기를 단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고 답한 이도 40.5%에 달했고, '개고기를 한때 먹었으나 이제는 먹지 않는다'는 이도 24.8%였다.




반면 '개고기를 계속 먹을 것'이라고 밝힌 응답자는 18.8%였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먹는다'는 이는 1.2%에 그쳤다.

2015년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1천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즐기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삼계탕(43%)이 압도적인 1위에 올랐고, 개고기·보신탕(6%)은 장어(7%)에 밀려 3위였다.

응답자의 약 73%가 '지난 1년간 개고기를 먹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개고기를 주로 즐기는 연령대는 50∼60대 이상으로 한정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실제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돼지·소·닭과 달리 개는 반려동물이자 '가족'으로 여기고, 개 식용 문화는 장년·노년층의 전유물로 여기는 분위기가 하루가 다르게 퍼져간다.

김모(30)씨는 "직장 상사 권유로 개고기를 먹은 적 있는데,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처럼 귀여운 강아지들이 나오는 TV프로그램을 보니 죄책감이 들더라"면서 "또래들도 개 식용 문화에 거부감이 강하니까 앞으로는 안 먹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개고기·보신탕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구시대적 문화'로 취급받으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보신탕집 주인들과 개농장주들이다.

이들은 '대한육견협회' 등 단체를 결성해 수년 전부터 '개고기 합법화'를 주장해왔고, 최근에는 종로 도심이나 국회 앞에서 수백명 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들은 축산법상 개도 가축이므로 축산물위생관리법상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에 개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고기도 적법한 '고기'로 인정해 합법적으로 도축·유통·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당국이 관리하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축산물위생관리법은 고치지 않고 되레 가축분뇨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3월 시행된 이 법에 따라 적법한 가축분뇨 처리시설을 갖추지 못한 개농장은 '무허가' 축사로 규정돼 사용중지 혹은 폐쇄 처분을 받게 됐다.

개농장주들은 "사실상 생존권을 강탈하고 실업자로 모는 처사"라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는 육견협회 집회에 참가한 60대 여성이 살충제를 마셔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개고기를 합법화하기에는 수요가 너무 줄어든 반면 동물권에 대한 인식 수준은 빠르게 올랐다"면서 "개고기가 불법도 아니어서 지자체가 단속할 수는 없지만, 시대에 뒤처진 사양산업인 것만큼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보인다"고 말했다.




hyo@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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