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광주 '영흥식당' 역사속으로…임병숙 씨 눈물의 폐업

2018-07-22 08:46:17



전날 밤늦게까지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한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지친 식당주인은 정오쯤에야 어린아이 주먹만 한 자물쇠를 '덜컹' 열고 출근했다.



어두컴컴한 식당 안을 깜박이는 형광등을 켜 밝히자, 식당 벽면에 가득 그려진 알록달록한 예술인들의 그림이 환하게 펼쳐졌다.

36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를 식히려고 뜨거운 바람만 쏟아내는 선풍기를 켜고 앉으니, 기다렸다는 듯 단골이 들이닥쳤다.

단골손님은 시원한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막걸리와 바꿔먹으려고 왔다"며 식당 여주인에게 커피를 내밀고, 냉장고에서 능청스럽게 막걸리병을 꺼내 유리잔에 가득 따라 들이켰다.

목젖을 출렁거리며 잔을 한 번에 비운 단골은 절로 나오는 '캬∼아' 소리를 내뱉었다.
"요즘 손 시인님이 안 오시네…."
단골의 혼잣말이 끝나자마자 삐걱대는 식당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고 한 노령의 남성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시인인 손광은 전남대 명예교수였다.

"양반은 못되시네…"라는 단골손님의 헛웃음 섞인 말을 뒤로하고, 손 교수는 식당주인인 임병숙(70·여) 씨의 앞에 서서 "문 닫지 말어, 그러지 말어. 이 좋은 집을 어찌…"라고 푸념을 쏟아냈다.


임씨의 영흥식당은 오는 31일 30여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문 닫는다.
임씨가 식당을 맡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32년 전인 1986년 2월께다.
옛 광주 동구청 앞 목 좋은 자리에 장사 잘되는 식당이 나왔으니 인수해보라는 시누이의 추천에 오래 고민하다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청, 구청, 금남로 직장인들을 상대로 낮에는 국밥을 1천200원에 팔고 저녁에는 막걸리를 300원에 팔았다.

이후 가을에는 전어를 연탄불에 굽고, 봄에는 황실이(황석어)를 튀기고 갑오징어를 손맛으로 무쳐 안주로 내놨다.

오랜 세월이 지나 전남도청이 이전하고, 동구청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점차 없어지는 막걸릿집을 찾는 단골들은 세월을 버티고 남아 있는 이 식당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특히 4·19혁명부터 5·18, 최근 촛불시위까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변곡점마다 금남로 거리에 나선 민주인사들이 새가 둥지에 깃들듯 찾아들었다.

주변 예술의 거리를 찾은 예술인들도 꼬박꼬박 출근도장을 찍으면서 이곳은 민주인사와 예술인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


아들 둘을 대기업에 취업시키고 마흔의 나이가 될 때까지 이 식당에서 번 돈으로 키운 임씨는 최근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손발이 저리는 지병 탓에 식당 운영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수채화의 거장 강연균 화가가 식당 안 벽에 그린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폐업소식을 듣고 찾아온 단골들의 '문 닫지 말라'는 눈물 섞인 하소연이 옷깃을 부여잡지만 임씨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30여년 정든 식당을 문 닫는 소감을 묻는 말에 임씨는 "정말 추억이 많은 곳인디…. 대통령이 당선됐다고 잔치허고, 돌아갔다고 울고, 잘 못헌다고 분노하던 손님 양반들이 가장 눈에 밟혀"라고 말했다.

31일 영흥식당과의 작별을 위해 기타 치고 노래하는 작은 '쫑파티'를 하겠다는 단골들의 말에 임씨는 "그날 만은 눈물이 날 것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영흥식당의 폐업을 아쉬워하는 한 손님은 "모르는 사람은 막걸릿집 하나 치우는데 왜 이리 떠들썩한가 싶을 것이다"며 "광주 사람의 모든 추억을 가지고 가는 임씨가 부자다"며 건배를 외쳤다.


pch80@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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