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목소리는 '천연 진정제'…'마취서 깬 아이' 불안 잠재워

2018-08-10 07:55:19



어린아이들은 전신 마취 수술 후 회복되는 과정에서 갑자기 울부짖거나 수술 부위의 드레싱을 잡아 뜯고, 링거 라인을 뽑는 등의 돌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소아 섬망'이라고 하는데, 소아 중환자실에 입원한 아이의 절반가량이 이런 증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된다.



원인은 아이들이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감과 각성기의 불완전한 의식 상태 등으로 주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개 30분 내로 증상이 자연스럽게 호전되지만 자칫하다간 낙상이나 자해 등의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증상이 심하면 여러 명의 의료진이 달라붙어 못 움직이게 하고, 이로도 안되면 진정 약물을 투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수술 후 아이가 마취에서 깨어날 때 미리 녹음한 엄마의 목소리를 들려주면 이런 섬망 증상을 크게 완화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교실 김유진 교수팀은 수술 후 전신 마취에서 깨어난 2∼8세 어린이 66명을 대상으로 미리 녹음해둔 엄마의 목소리가 섬망 증상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0일 밝혔다.

의료진은 전체 소아 환자를 33명씩 나눠 절반에는 엄마 목소리를, 나머지 절반에는 타인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녹음된 메시지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렴. 엄마랑 집에 가자. 일어나. 눈 떠봐. 깊은 숨을 쉬렴." 등이었다. 녹음 메시지는 10초 간격으로 틀어줬다.

이 결과 마취 후 회복실에 도착했을 때의 소아각성섬망평가 점수가 엄마의 목소리를 들려준 그룹이 9.8점으로 대조군의 12.5점보다 크게 낮았다. 아이의 흥분과 불안정 상태가 모두 크게 줄어든 것이다.

회복실에 체류하는 동안의 섬망 발생률도 엄마 목소리를 들려준 그룹이 24.2%, 낯선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준 그룹이 60.6%로 차이가 컸다. 두 그룹 간 섬망 발생 비교 위험도는 4.8배에 달했다.
연구팀은 녹음된 엄마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특정 뇌 영역이 활성화되고, 주의집중이 유도됨으로써 심리적, 행동학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했다.

김유진 교수는 "소아 섬망에 대한 기존의 방법들은 제한된 의료 인력과 약물의 과다 투여로 저산소증, 과진정 등의 부작용이 발생해 회복실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더욱이 수술 직후의 섬망 증상은 일회성 심리 반응에 그치지 않고 수술 이후 일주일까지도 영향을 미쳐 퇴원 후 악몽, 분리불안, 수면장애 등의 행동 변화를 보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엄마의 목소리는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태아가 인지 가능한 것으로 보고된다"면서 "녹음된 엄마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건 비용이 들지 않고 약물 등에 의한 부작용에서 자유로우면서 쉽게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신 마취 후 소아 환자의 각성 흥분 및 불안을 줄일 수 있는 좋은 예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영국마취저널'(British Journal of Anaesthesia) 최신호에 발표됐다.

bio@yna.co.kr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PC버전
Copyright sport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