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에서, 길바닥에서 합동차례…세월호 유족 5번째 추석나기

2018-09-24 18:30:08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남측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합동 차례상. 2018.9.24. [촬영 김여솔]

"이제 아이들이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에요. 술도 같이 올리겠습니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남측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유가족 합동 차례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전명선 4·16 세월호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고(故) 전찬호 군의 아버지인 전 위원장은 향 위로 청주를 담은 술잔을 두 바퀴 반 돌린 뒤 차례상 위에 올려놨다. 술잔을 옮기는 전 위원장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뒤이어 고 유예은 양의 할머니인 이세자 씨가 흰색 국화꽃을 내려놓으며 "예은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내내 흐느끼던 이 씨는 헌화 후에도 한참이나 예은 양의 영정사진을 멍하니 바라봤다.

고 임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 씨는 "아이들이 컸으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을 나이겠죠"라고 말한 뒤 "아들 생일이 9월 13일이어서 추모관에 맥주 한 캔을 넣어주고 왔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올해로 세월호 참사 이후 다섯번째 추석을 맞은 세월호 유가족들은 합동 차례상 위에 과일, 다과, 전, 송편 등과 함께 숨진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을 올려놓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2기 특별조사위원회의 문호승 상임위원은 "선체 침몰 원인, 사후 수습과정과 인양과정, 그사이 정부의 조사방해 여부 등을 면밀히 조사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차례가 끝난 후에는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으며,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과 박주민 의원도 차례를 함께 지낸 뒤 헌화했다.




이날 서울 도심 곳곳에서 사측과 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조합원들도 합동 차례를 지냈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조합원들은 이날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정문 앞에 차례상을 차리고 75m 굴뚝 위의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을 소리쳐 불렀다.

천막 제조업체인 파인텍은 정리해고 문제 등으로 사측과 갈등을 겪어온 대표적인 장기 농성 사업장이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2006년부터 사측의 정리해고, 공장 가동 중단에 맞서 농성을 벌여왔다.
차광호 위원장은 "두 동지가 오늘로 317일째 고공에 있다. 가족들과 함께 풍성한 한가위가 돼야 하는데 우리가 바라고 염원하는 부분들이 해결되지 않아 위에서 차례를 지낸다"며 "전국에서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가 승리하고 노동자들이 살맛 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다"고 말했다.

홍 전 지회장은 전화로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고, 특별한 추석이 될 것"이라며 "우리 동지들과 힘차게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화답했고, 박 사무장은 "명절인데 쉬지도 못하고 농성장에 와 줘서 고맙다"며 "우리도 동지들 힘을 받아서 열심히 투쟁하고 있으니 계속 힘을 보태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차례를 지내고 덕담이 오간 뒤 지상의 참가자들은 음식을 비닐봉지에 포장해 굴뚝에서 내려온 비닐 가방에 넣어 올려보냈다.



현대·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는 이날 오후 2시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단식농성장에서 사측과 투쟁하다 세상을 먼저 등진 류기혁·박정식·윤주형 열사를 기리는 합동 추모제를 지냈다.

흰색 소복을 입은 조합원들은 3명의 열사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전, 나물, 고기, 생선, 송편 등으로 채워진 차례상을 대접했다. 이들은 지난 22일부터 현대·기아차의 사내하도급 노동자 특별채용 방침이 불법파견을 은폐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조합원들은 세 열사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고 "불법파견을 바로잡지 못하면 비정규직은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 수밖에 없다"며 "하루빨리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도 이날 오후 1시 성실 교섭과 택배기사 블랙리스트 의혹 해소를 촉구하는 농성을 2주째 벌이고 있는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합동 차례를 지냈다.

jk@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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