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만의 Why not?]손혜원 의원에게 전하는 편지,"광팬이었습니다"

2018-10-12 12:33:50

연합뉴스

존경하는 손혜원 의원님께.



우선, 저는 손혜원 의원님이 썼던 '고무 다라이'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친근하고 익숙한 표현이었거든요.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늘 하시던 말인데다 지금도 팔순에 가까운 저희 고모님이 가끔 쓰시곤 합니다. 연로하신 손 의원님에게도 친숙한 단어이려니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저는 손 의원님의 '광팬'이었습니다. 정치를 하시기 전, 한국 최고의 브랜드 디자인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실 때부터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손 의원님이 창조한 브랜드들이 제 일상을 온통 감싸고 있네요. 아파트, TV, 밥솥, 세탁기부터. '끊어야지'하고 욕하면서도 여전히 손에 달고 사는 멋진 타이틀의 국산 담배, 그리고 며칠 전 국정감사를 보고 난 뒤 시린 가슴을 달래느라 밤새 퍼마신 소주까지도. 마치 '손혜원 월드'에 살고 있다는 느낌에 아주 그냥 등골이 서늘해 집니다. 뭐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는 손 의원님의 '광팬'이었으니까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 때는 정말 속이 후련했습니다. 의원님은 정확한 사실 관계로 벼린 날카로운 말의 창으로 지금까지 견고한 권위의 갑옷에 쌓여있던 적폐의 심장들을 꿰뚫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국민들이 의원님께 바라는 바였습니다. 저는 손 의원님이 지금의 새 시대를 여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날선 비판 정신이 스포츠계, 특히 야구계로 향하게 된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됩니다. 냉정히 보면, 지금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나 한국야구소프트볼협회(KBSA)가 해왔던 일 중에서는 합리적으로 처리되지 못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분명 실책이 있었고, 그런 부분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한편으로는 10년 이상 야구를 취재한 기자로서 그런 일들을 더 날카롭게 지적하고 견제하지 못한 데 관해 야구팬들께 송구합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이 전부 구 적폐 세력의 영향을 받은 특정 인물의 획책에 의한 부정과 비리의 소산이라는 의원님의 일관된 주장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선동열 대표팀 감독의 선임이나 대표팀 구성에서 빚어진 문제들까지도 그런 프레임으로 바라보고 국정감사에 임한 손 의원님의 모습에는 적잖은 실망감마저 듭니다.

어떤 정보원에게 어떤 내용을 들었을 지는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이미 드러났듯 그런 정보들은 다분히 왜곡되고 잘못된 내용들이었습니다. 마치 속이 비어 골목 구석으로 치워진 '고무 대야(다라이)'같은 정보였던 것이죠. 그런 건 손에 들어서도, 같은 공간에 있어서도 안됩니다.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게 점점 명확해질 것입니다.

손 의원님이 선동열 감독에게 했던 발언을 그대로 돌려드립니다. 저는 손 의원님이 특정 정보원으로부터 이용당하고 있는 게 아닌 지 걱정됩니다. 수 십년 동안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냉철한 판단으로 브랜드 전문가의 입지를 굳히고, 또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쾌도난마의 행보를 이어오던 의원님이 이렇게 어리숙한 판단을 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봅니다.

손 의원님의 바람과는 달리 1200만 야구팬은 지금 손 의원님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국정감사에서 나온 무지와 편견, 그리고 무례함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손 의원님은 야구를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 또 정운찬 총재를 국정감사에 부르신다고 하는데, 부임 1년이 채 안돼 대표팀 전임감독 선임에 관여하지 않은 정 총재에게 과연 무슨 질타를 할 지, 그래서 무슨 소득을 이끌어낼 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만약 손 의원님이 1200만 야구팬의 지지를 회복하고 제대로 야구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고 싶으시다면 눈과 귀를 새로 여시길 조언 드립니다. 의원님은 SNS댓글에서 선 감독을 향해 "자신의 소신은 맞고 다른 이들의 의견은 싸그리 무시하는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 역시 그대로 돌려드립니다. 의원님의 소신과 다른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더불어 그런 소신의 배경에 왜곡되거나 오염된 정보가 개입된 건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보시길 청원합니다.



p.s. 답신은 주셔도 좋고,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국정감사에서만 제대로 하시면 됩니다.

스포츠1팀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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