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스토리]'달리며, 토론하며'-K리그 심판들의 뜨거운 겨울나기

2019-02-22 05:20:00

◇K리그 심판진이 20일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상주한려해상체육공원에서 진행된 체력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남해=이원만 기지wman@sportschosun.com

빡빡한 '주훈야강'(낮에는 훈련, 밤에는 강의)의 시간이 이어졌다. 힘겨운 체력훈련으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하얀 입김과 함께 터져나온다. 그래도 멈출 순 없다. 함께하는 동료가 있고, '더 정확하게'라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다.



몸이 고단한 건 잠깐이다. 저녁에는 또 다른 고민의 시간이 펼쳐진다. 비디오 영상을 통해 나의 실수가 동료들 앞에 펼쳐진다. 강사들은 칭찬과 지적을 노련하게 섞어가며 경기 영상을 낱낱이 뒤적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토론. '왜 저기서 더 달려들어가지 못했는가', '그때는 왜 콜을 보류했나'. 서로의 관점을 나누는 사이 밤이 깊어간다. 더불어 경기를 보는 시선이 깊어지는 걸 느낀다. 나는 'K리그 심판'이다.

지난 18일부터 경상남도 남해군에서는 38명의 K리그 주·부심 요원들이 구슬땀을 쏟아내고 있다. K리그 개막을 앞두고 더욱 정확한 판정을 위해 심판들도 막바지 '동계훈련'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미 지난 달부터 독일과 터키에서 진행된 1차 동계훈련에 이은 2차 캠프로 막바지 실전 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장에서 본 K리그 심판진의 '남해캠프' 스케줄은 매우 빡빡했다. 오전부터 시작되는 체력훈련과 이론 수업 및 토론이 밤까지 이어진다. 그럴 수 밖에 없다. K리그 경기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체력과 이론 모두를 탄탄히 갖춰놔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K리그 심판은 대표적인 '극한 직업'이다. 원래 심판이라는 자리가 누구에게도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든 위치인데다 경기 진행을 위한 이동량도 프로 선수에 버금갈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조영증 심판위원장은 "지난 해 통계를 보면 주심들이 한 경기당 평균적으로 약 9.6㎞를 뛰어다닌다고 나온다. 이게 평균치고 경우에 따라 많게는 12㎞까지 나오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기본적으로 주력과 체력이 뒷받침 돼야 좋은 판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뛰고 또 뛸 수 밖에 없다. 단거리 구간과 장거리 구간 러닝, 그리고 근력 훈련이 체력 훈련의 기본 요소들이다. 그걸 소화하고 나면 실전 훈련이 이어진다. 오프사이드 상황, 실전에서의 볼 패싱 상황에 따른 심판진의 올바른 이동 경로 연습 등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조 위원장과 함께 대한축구협회 유병섭, 강치돈 심판 강사진이 교육을 이끌고 있다.

오전과 낮 시간에 이런 형태의 체력 훈련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래서 인지 K리그 심판진은 하나같이 현역 선수들처럼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뚱뚱하고 배나온 축구 심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스피드와 위치 이동을 함게 따라가야 하고, 때로는 먼저 달려가 좋은 판정을 이끌어낼 수 있으면서 동시에 플레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위치를 선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체력은 선수처럼 만들어야 하고, 경기를 분석하는 눈은 감독처럼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유병섭 강사는 "심판진이 좋은 판정을 하려면 반드시 좋은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 단순히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거리가 가깝더라도 위치가 좋지 않으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잘 볼 수 있는 위치'를 파악하고 거기에 빨리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전과 오후에 걸쳐 체력 및 실전 훈련을 마치면 저녁 시간에는 강의와 토론의 시간이다. 남해군 문화센터 대강당에서 경기 영상을 토대로 강사진의 해설과 지적, 그리고 해당 경기에 나선 심판진의 설명과 반성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강치섭 강사는 "VAR 시스템이 도입된 상황에서 심판들은 더욱 정확한 판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경기의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 선수와 벤치, 팬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판정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영상을 가리키며 "전술적인 맥락도 살펴야 한다. 공격이 진행될 때 크로스나 스루 패스가 모두 가능하다. 그 상황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지 심판진이 미리 예측해야 한다. 공을 보고 따라가면 늦다"고 지적했다.

교육에 참가한 심판진의 표정은 진지했다. 강도 높은 체력 훈련에 지칠 법도 한데, 그들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사실 K리그 심판들은 지금까지 늘 비판과 비난의 '액받이'가 돼 온 게 사실이다. 그런 상황이 달가운 심판은 누구도 없다. 하지만 불평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은 실력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수 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지금 흘리는 구슬땀이야말로 '신뢰 회복'의 자양분이다. 2019 K리그에서 심판진의 명판결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남해=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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