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으로 봉인해제, 삼성야구의 흥미로운 '부산행'

2019-03-26 08:30:09

김상수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삼성의 개막 2연전. 힘겨웠다. 천신만고 끝에 NC와의 원정 개막 2연전에서 1승1패로 균형을 맞췄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롯데와의 주중 3연전을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여기서 하나, 주목할 부분이 있다. 선수단에 퍼져 있던 '간절함'이다. 마치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것 같았다. NC와의 2차전은 '죽도록' 안 풀렸다. 꽉 막혔던 혈을 기어이 뚫어낸 것은 바로 선수들의 '투혼'이었다.

개막 2연전, 안 풀려도 너무 안 풀렸다. 첫날부터 잘 맞은 타구가 상대 호수비에 턱턱 걸렸다. 병살타도 3개나 나왔다. 0대7 완패. 타자들에겐 시즌 첫 안타가 중요하다. 마수걸이가 늦어질 수록 초조함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무거운 마음이 둘째 날에도 이어졌다. 꼭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발목을 잡았다. NC 선발 루친스키에게 얻어낸 4사구가 무려 7개. 하지만 딱 한방이 터지지 않았다. 6회까지 1-3으로 끌려가야 했다.

5회까지 2실점으로 잘 버티던 좌완 선발 백정현도 타선의 잇단 희망고문 속에 6회 들어 힘이 살짝 빠졌다. 1사 후 홈런 포함, 연속 3안타를 허용한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1사 1,2루. 더 이상의 실점은 곧 개막 2연패를 의미했다.

이승현이 마운드에 올랐다. 2016년 말 LG로 이적한 FA 차우찬의 보상선수로 푸른 유니폼을 입은 우완 투수. 지난 2년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올시즌은 180도 달라졌다. 정교하고 과감해졌다. 개막전에 이어 둘째날도 완벽했다. 공격적 피칭으로 김성욱과 이상호 두 타자를 공 5개 만으로 돌려세우고 추가 실점을 막았다.

이승현 덕에 삼성 벤치에는 역전의 희망이 움텄다. 포기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투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7회초 1사 후 박해민이 1루 실책으로 출루하자 구자욱은 장현식의 몸쪽 낮은 공을 피하지 않고 발에 맞았다. 이날 두번째 몸에 맞는 공으로 1사 1,2루. 이원석은 끈질긴 승부 끝에 바뀐 투수 김진성의 바깥쪽 공을 밀어 우익선상에 떨어뜨렸다. 우익수 베탄코트가 바운드 된 공을 한번에 잡지 못했다. 그 사이 2루주자는 물론 1루에 있던 동점주자 구자욱이 혼신을 다해 홈으로 뛰어들었다. 구자욱은 홈을 밟기 전에 이미 온 몸으로 기쁨을 표시했다. 그는 곧바로 이어진 7회말 수비에서 박석민의 우전 안타성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내는 투혼으로 선수단의 투지에 불을 질렀다. 3-3 동점이 되자 마운드의 '큰 형님' 권오준이 7회 1이닝 퍼펙트 피칭으로 징검다리를 놓았다.

대망의 8회초. 주인공은 김헌곤과 김상수였다.

선두 타자 김헌곤은 바깥쪽 공을 몸을 던지듯 배트 중심에 맞혀 좌익선상 2루타로 출루했다. 캡틴 강민호는 어떻게든 김헌곤을 3루에 보내고 싶었다. 1스트라이크 이후 익숙하지 않은 희생 번트까지 시도했지만 파울. 이후 잡아당긴 땅볼이 3루수 지석훈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진루타가 무산되는 듯한 순간. 하지만 2루주자 김헌곤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석훈이 주춤 물러서면서 포구하는 모습을 확인하곤 1루에 송구하는 순간 3루로 냅다 뛰었다. 1루수 모창민이 던져보지도 못할 만큼 허를 찌르는 플레이였다. 김헌곤의 환호와 지석훈의 찡그림이 교차하는 순간. 김헌곤의 센스와 투지가 만들어낸 '오늘의 장면'이었다.

이학주의 번트가 무위에 그치면서 2사 3루. 또 한번 득점이 무산되나 싶었던 순간 김상수가 친 타구가 투수 배재환의 글러브를 스치며 2루 쪽을 향했다. 2루수 이상호가 역동작으로 잡아 1루에 뿌렸다. 죽을 힘을 다해 뛰던 김상수는 1루 베이스를 향해 온 몸을 날렸다. 혼신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결과는 간발의 차 세이프였다. 기어이 홈을 밟으며 결승득점을 올린 김헌곤은 펄쩍 펄쩍 뛰며 기쁨을 표했다. 이 과정에서 김상수는 베이스에 걸린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됐다. 얼핏 무모해 보였던 플레이였지만 벤치의 다른 선수들의 투혼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이유 있는 허슬플레이였다. 그만큼 김헌곤과 김상수의 간절함은 컸다.

역전에 성공하자 투수들이 불끈 힘을 냈다. 더블 클로저 장필준과 우규민은 혼신의 힘을 다해 8,9회를 막아내며 1점 차 터프 세이브 상황을 안전하게 지켜냈다.

너 나 할 것 없이 벤치가 똘똘 뭉쳐 만들어낸 시즌 첫 승. 이날의 경험은 올 시즌 삼성 야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공산이 크다.

만약 '오늘은 뭘해도 안되는 날이야'라는 안일함 속에 무기력하게 2연패를 당했다면? 3년 연속 가을잔치에 소외됐던 선수들의 패배의식은 깊어졌을 것이다. 시즌 내내 숱하게 찾아올 힘겨운 고비를 넘지 못하고 무너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선수들은 두번째 경기부터 '뭉쳐서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스스로 이끌어냈다. 비록 화끈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이날 삼성 선수들이 보여준 온 몸을 던진 투혼의 야구는 박수 받기에 충분했다. 꾸역꾸역 잘 이기는 팀이 강팀이다.

일상적 패배주의와 투혼의 야구는 종이 한장 차이다. 각 팀에는 특유의 문화가 있다. 그 문화 차이가 기나긴 페넌트레이스의 결과 차이를 만든다.

삼성 구단 한 관계자는 "너무 잘 하려다 보니 오히려 꼬였던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이겼으니 이제 좀 풀리지 않겠느냐"고 희망적으로 전망했다.

야구는 철저히 멘탈 게임이다. 투지에 불타는 삼성 선수들이 부담감 마저 떨쳐내면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투혼의 역전승으로 꽉 막힌 혈을 뚫어낸 삼성 야구. 이번 부산행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부산=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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