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평양 남북전이 준 교훈, 스포츠 평화 도구 아닌 그냥 전쟁이다

2019-10-20 12:40:34

남북전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스포츠조선 노주환 기자]이번 '깜깜이' 평양 남북 축구 A매치가 남긴 상처와 파장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주장 손흥민을 비록한 우리 태극전사들은 북한 선수들의 격한 몸싸움과 욕설에 '이게 축구인지' 의심이 들정도였다고 한다. 국내 축구팬들은 태극전사들을 푸대접한 북한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야권 정치인들은 '무중계'에다 남측 취재진과 응원단이 방북하지 못한 걸 두고 현 정부의 무능력에 맹공을 퍼부었다. 29년만의 평양 남북 A매치를 취재하지 못한 남측 미디어는 북한 정부의 비상식적인 일처리에 분노했다. 계약금을 지불하고도 경기를 중계하지 못한 지상파 방송 3사는 두말할 것도 없다. 큰 기대를 갖고 평양을 찾은 세계 축구의 수장 잔디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텅빈 김일성경기장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필자는 대한축구협회 기자단 간사로 지난 15일 남북의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3차전이 '무관중' '무중계' '무응원' '무현장취재' 등 '역대급'으로 이상하게 진행되는 전 과정을 지켜봤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비협조와 태도 변화로 남측에선 그 어떤 미디어와 '붉은악마' 응원단도 남북전을 현장에서 관전하지 못했다. 통일부, 문체부, 대한축구협회, 언론 그리고 축구팬들이 북한 정부의 처분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18명의 남측 취재진을 허용하겠다던 태도는 경기일이 다가온 후 돌변했다. 그후 남측 미디어가 남북전 소식을 축구팬들에게 전하기 위해 한 행동은 최첨단시대에 말로 전하기 힘들 정도의 서글픈 촌극이었다. 축구협회 직원이 아시아축구연맹 파견 경기 감독관을 통해 얻은 제한된 경기 정보(경고, 선수교체, 득점 상황, 감독 코멘트 등)를 등록 미디어 대화방에 올려주었고 그걸 갖고 대중에게 소식을 전달했다.

북측이 경기 후 건내준 경기 녹화 DVD는 영상 화질, 중계권 여부 등의 문제로 축구팬들에게 방영되지 않았다. 대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등록 미디어에 한해 기자회견장 문을 걸어잠근 후 상영했다. 현재 우리 국민들이 볼 수 있는 영상은 협회가 편집해 올린 하이라이트가 전부다.

이번에 북한을 처음 방문하고 돌아온 대부분의 태극전사들은 2박3일 동안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그들은 북한의 통제된 사회의 한 단면을 보고 왔다. 공항(평양 순안공항)-호텔(고려호텔)-경기장이 전부였다. 북측 선수들의 거친 '안티 풋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우리 선수들의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고 0대0으로 비겼다. "안 다치고 돌아온 게 다행이다"는 위로의 목소리가 많았다. 일부에선 북측 선수들이 내년 우리나라 홈에서 대결할 때 똑같이 돌려주어야 한다는 날선 목소리도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이 남북한 대화 재개와 한반도 평화 무드 조성에 기여했다고 자랑했다. 그 얘기는 현재로선 절반은 맞고 나머지 절반은 틀렸다. 북한은 남측과 미국의 협상 테이블로 나왔지만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남측을 비난하며 제법 거리를 두고 있다.

스포츠는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게 정석이다. 정치권에선 자주 스포츠를 정치 도구화하려고 한다. 북한이 이번 남북 축구를 대하는 시각은 분명했다. 스포츠 관점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이상한' A매치가 되고 말았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얼어붙은 남북의 분위기를 해소하는데 스포츠 만큼 보기 좋고 쉬운 게 없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은 흑자 올림픽이 됐고, 당시 북한의 전향적인 자세로 대화의 꽃이 피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북한의 자세에따라 돌변했다. 지금이 남북이 처한 냉엄한 현실이다.

스포츠는 평화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경기장 내에서 공정한 규칙에 따라 전쟁 처럼 치열하게 싸운 후 그 결과를 서로 인정했을 때 우정과 화합의 무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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