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진단]'곧 드러난' FA등급제의 허점, 실력 기준 분류가 필요하다

2021-01-15 11:20:41

올시즌 후 FA가 되는 키움 서건창은 올해 연봉을 지난해보다 1억2500만원이나 자잔삭감했다. FA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 키움 히어로즈 서건창이 연봉을 자진 삭감한 이유는 올해 말 FA 시장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서건창은 지난해 135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7푼7리, 134안타, 24도루, 79득점, OPS 0.776을 기록했다. 타율 3할에는 실패했지만, 대폭적인 삭감 요인은 없었다. 키움 구단은 3억5000만원에서 3000만원을 삭감은 3억2000만원을 제시했지만, 서건창은 오히려 1억2500만원을 깎아달라고 했다. 키움은 이를 받아들여 서건창은 올시즌 2억25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유례 없는 자진삭감이다. 올시즌 후 생애 첫 FA가 되는 서건창은 에이전트의 전략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겨울 도입된 FA 등급제 '대응책'이라 할 수 있다. FA 등급제는 FA가 다른 팀과 계약하는 경우 원소속팀에 해줘야 할 보상을 일괄적 기준에 따르지 않고 등급에 따라 달리 적용하는 제도다. 보상 규모는 A급은 '보호선수 20인 외 1명+직전 연봉의 200%' 또는 '직전 연봉의 300%', B급은 '보호선수 25인 외 1명+직전 연봉의 100%' 또는 '직전 연봉의 200%'다.

등급 분류 기준은 최근 3년간 평균 연봉이다. 팀내 3위, 전체 30위에 들면 A급으로 분류된다. 서건창은 올해 연봉을 대폭 낮춤으로써 A급을 피할 수 있게 됐다. FA 시장에 B급으로 나가면 보상 규모는 '선수 1명+2억2500만원' 또는 '4억5000만원'이 된다. 만약 키움 구단 제시액 3억2000만원을 받아들여 A급이 된다면 보상 규모는 '선수 1명+6억4000만원' 또는 '9억6000만원'으로 크게 높아진다.

서건창은 FA 등급제 규정을 '역이용해' 보상 규모를 낮춤으로써 시장에서 이적 가능성, 즉 수요를 높이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고 봐야 한다. 애초에 FA 등급제를 연봉 기준으로 한다고 했을 때 일부 구단들은 한계와 허점이 곧 들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선수가 스스로 연봉을 깎는다고 문제될 게 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FA 시장, 나아가 구단과 선수 간 계약 문화에 심각한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 '반드시 다른 팀으로 옮기겠다'고 마음먹은 예비 FA라면 서건창처럼 전략적 삭감을 선택을 할 것이다. 거꾸로 구단이 예비 FA의 연봉을 일부러 크게 올려주기도 하는데, 이는 팀에 필요한 특급 선수의 이적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꼼수'다. 2000년 FA 제도가 시행된 이후 매년 목격돼 온 사실이다.

그러나 선수의 기량과 가치에 맞게 연봉이 책정되고 FA 시장이 움직여야 KBO가 추구하는 전력 평준화, 투명성에 가까워진다.

이런 이유로 FA 등급 기준을 당장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연봉, 나이, 또는 재자격과 같은 지금의 등급 기준에는 해당 시즌 선수의 의지 및 실력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선수의 가치를 오로지 당해 시즌 실력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지난해 타율 3할5푼4리, 28홈런, 115타점을 올린 최형우가 재자격 신분이라는 이유로 B급인 게 말이 되나.

메이저리그가 한동안 실시했던 FA 평점 제도를 참고할 만하다. 메이저리그는 2011년까지 엘리아스 스포츠 뷰로(Elias Sports Bureau)의 평점 랭킹에 따라 FA 등급을 매겼다. 포지션별로 상위 20% 이내는 A급, 20~40%는 B급으로 분류했다. 포지션은 1루수-외야수-지명타자, 2루수-3루수-유격수, 포수, 선발투수, 구원투수 등 5개로 구분했다. 평점은 직전 두 시즌 성적을 기초로 뽑았는데, 타자는 홈런, 타점, 타율, 투수는 투구이닝, 평균자책점 등 전통적 개념의 통계가 기준이 됐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2012년 FA 등급제를 버리고, 퀄리파잉 오퍼(quaalifying offer)를 도입했다. 구단이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고, 선수가 QO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QO를 받아들이면 정해진 금액(직전 시즌 상위 125명의 평균 연봉)에 1년 계약을 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팀과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다. QO는 FA 시장에서 구단과 선수의 자율성을 높인 조치라는 평가를 받는다.

수도권 구단의 한 단장은 "연봉 기준은 객관적일 수 없고, 성적도 포지션마다 평가 방식이 달라 정확하지 않다. 우리도 언젠가는 퀄리파잉 오퍼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소속 구단이 '키움'이 아니라면 서건창이 그렇게 했을까. 편법 방식이 정상인 양 통용돼서는 안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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