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상 국가대표 출신인 기성 앤더슨(44) 씨는 한국에서는 '덕순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졌다. 지난해부터 KBS 1TV '6시 내고향'에서 리포터로 활동하면서 만난 어르신들이 그의 이름이 발음하기가 어렵다며 붙여준 애칭이다. 이제는 본명보다 더 유명해진 별명이다.
앤더슨 씨는 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평생을 살아도 매일 설레고 두근거릴 것 같은 곳이 한국"이라며 "오늘은 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무슨 일이 생길지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넓은 집과 좋은 차를 샀지만 인생이 즐겁지 않았어요.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다른 일을 해볼까, 이사를 할까 고민하다 어릴 적 살던 한국에 다시 가보자고 결심했어요."
마흔 살을 앞둔 2015년에 한국행을 택한 그는 "당시 서울 잠실 근처에서 살았는데 집 근처에 산과 강이 펼쳐진 모습이 그리웠다"며 "먼 곳에서 다시 인생을 시작해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생활보다 한국에서 더 행복감을 느꼈던 이유가 환경의 변화만은 아니었다"며 "부정적인 생각과 욕심 등을 두고 오자고 결심을 했던 게 컸다"고 강조했다.
지인의 소개로 통역 일을 맡았고, 과거 운동선수 경력을 살려 퍼스널 트레이너도 했다. 유튜브 채널에서 그의 유창한 한국어와 운동 영상 등이 화제가 오르자 방송 섭외도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밝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니 날 찾는 이들이 많아지더라"며 "오늘의 삶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누구나 웃는 사람 옆에 있고 싶어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 나를 위해 더 무엇을 할 수 있나를 고민하게 됐어요."
'6시 내고향' 출연은 그에게 찾아온 가장 큰 기회이자 전환점이었다. 단순히 유명해졌다기 보다는 노동의 가치, 한국이란 나라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이 많다는 사실 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강원도 고성과 속초, 경북 울진, 경남 통영, 부산, 울산, 전남 여수… 일주일에 한두 차례 전국 어촌을 돌아다니면서 12시간 넘게 원양 어선을 타고 뱃멀미를 견디며 꽃게와 생선을 건져냈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말 한국관광공사가 미주권 고객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내 관광 영상을 찍기도 했다.
그는 "서울에는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지방에서는 '셀카 요청'을 받는 유명인"이라며 "방송이 나간 뒤로 해당 수산물 판매량이 올라간다고 하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경제 살리는 덕순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보람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일이 고되긴 하지만 그만둘 수 없는 이유"라고 고백했다.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마주친 풍경은 그를 사로잡았다. 조금만 걸어가도 강이나 호수, 바다가 나오는 경험은 미국에서 겪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평생 돌아다녀도 다 못 볼 거라는 생각도 들 정도"라며 "매일 최소한 새로운 장소 한두 곳을 찾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나와 똑같은 서울에 살지만 무기력하고 재미없다는 이들을 종종 만나요. 큰 행복이 아니라 일상 주변에 놓인 작은 행복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한국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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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