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반려동물 치료받다 죽어도 진료기록 안 보여주는 이유는?

2021-12-02 11:24:50

[연합뉴스 사진자료]

반려동물 1천만 시대로 접어들면서 동물 의료분쟁이 갈수록 늘고 있다.



보호자들은 반려동물이 치료나 수술 도중 죽거나 다치면 정확한 원인과 진료상 과실 여부를 알고 싶지만 상세한 진료기록을 공개하는 동물병원은 드물다. 현행법상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가 있는 의사와 달리 수의사는 동물 진료부를 발급할 의무가 없다.

이 때문에 동물 진료부 발급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도 의료사고로 강아지를 잃었다는 주장과 함께 동물병원 진료기록부 발급을 의무화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국회에서도 수의사법을 개정해 제도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수의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그렇다면 수의사들이 동물 진료부 발급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얼까?



전국 2만여 명의 수의사들을 대표하는 대한수의사회에 문의한 결과,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약물 오남용에 대한 우려였다.

현재는 상당수 동물용의약품을 수의사의 처방전이 없어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상세한 치료 과정과 사용한 의약품이 기록된 진료부를 발급하게 되면 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자가 진료로 약물을 오남용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용의약품 8천200여종 가운데 25%인 2천여종이 처방대상으로 지정돼 있지만, 이 중에도 상당수는 동물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품목은 주사용 항생제나 백신 등 540여종, 6%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동물용의약품은 인체용의약품과 달리 전문의약품도 아무나 약국에서 살 수가 있는 유통구조여서 진료부를 공개하면 진료기록을 보고 따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 수의료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동물 의료체계는 아직 용어나 항목, 치료방법이 표준화돼 있지 않고 수의사마다 치료방법이 달라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동물 진료부를 발부받아 보게 되면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이 생기고 법적 분쟁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결국 동물 진료부 발급 의무화에 앞서 동물용의약품의 유통관리를 강화하고 동물 의료체계를 표준화하는 등 제도 보완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의사회는 이 같은 의견을 국회에 제출해 상임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비중 있게 반영돼 있다.




현행 의료법(21조)에는 환자가 의료기록(진료기록부)의 열람 또는 사본 발급을 요청하면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수의사법(12조)은 수의사가 동물에 대한 진단서, 검안서, 증명서, 처방전 발급 요구에는 응하도록 규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의료기록이 담긴 진료부에 대한 열람·발급 조항은 없다.

이로 인해 반려동물 의료사고가 나도 보호자들이 진료기록에 접근할 수 없어 불만과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의료사고에 대한 수의사의 과실을 입증하기 어렵고 소송을 내더라도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호자의 정당한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동물약국 약사들도 진료부 발급에 반대하는 수의사들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대한동물약국협회 김성진 부회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동물병원에서 쓰는 의약품 중 80% 이상이 인체용의약품"이라며 "보호자가 진료부에서 사용 약물을 알게 돼도 대부분 인체용 전문의약품이거나 수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이어서 자가진료에 의한 약물 오남용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동물용의약품의 유통관리는 인체용의약품처럼 의사가 처방하고 약사가 조제하는 의약분업을 통해서 강화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사람의 진료기록부 발급이 의무화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의 동물 진료부와 마찬가지로 발급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이 적지 않았고, 발급 의무화에 대한 의사들의 반대가 심했다. 발급이 의무화된 건 2000년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다.




동물 진료부 발급 요구는 입법을 통한 제도 개선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2017년 최도자 당시 국민의당 의원은 동물 진료부 발급 요구를 거부할 수 없게 하는 수의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수의사들의 반대 속에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20대 국회의 임기 종료로 폐기됐다.

바통을 이어받은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16명)이 같은 취지의 수의사법 개정안을 지난해 7월 대표발의한 데 이어 같은 당 홍성국 의원(10명)과 정청래 의원(10명)도 올 6월 유사한 법안을 각각 발의해 현재 3건의 법안이 국회에서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진료부 발급 의무화에 긍정적이지만 약물 오남용 우려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동식 농림축산식품부 방역정책과장은 "동물 진료부 열람·사본발급 의무화에 공감하고 있다"며 "다만 진료기록이 제3자에게 공개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약물 오남용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농식품부령(시행규칙)으로 보호자 이외의 공개범위를 소송용이나 보험회사 제출용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이 같은 방안이 동물보호자의 알권리를 존중하면서도 약물 오남용 우려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을 국회에 제출하고 법안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법무법인 청음 반려동물그룹 문강석 변호사는 "지금은 요청하면 진료부를 발급해주는 동물병원도 있지만 안 주는 곳도 있다"며 "동물병원 진료부도 병원 진료기록부처럼 공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결국 시기의 문제인데 수의사들의 여건에 맞춰 속도를 조절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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