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암 투병 끝에 이달 5일 숨진 박옥순(70) 씨가 시신을 경희대 의과대학에 기증했다. 가족 모두 박씨의 뜻에 따라 기증에 동의했다.
박씨는 47세이던 1999년 3월 가족이나 지인이 아닌 20대 여성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신장을 나눈 '순수 신장기증인'은 국내에서 한 해 2천여건인 신장 기증 중 10건 미만에 그칠 정도로 극히 드물다. 이런 사례는 2018년 전체 신장 기증 2천407건 중 4건, 2019년 전체 2천687건 중 1건뿐이었다.
자매가 함께 순수 신장기증인이 된 사례는 국내에서 박씨 자매가 처음이라고 장기기증본부는 전했다.
박옥남 씨는 1992년께 박진탁(86) 장기기증본부 이사장(목사)이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신부전 환자가 살 방법은 신장 기증뿐"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박 이사장은 1991년 1월 생면부지의 신장병 환자에게 자신의 신장을 기증한 국내 첫 순수 신장기증인이다.
박옥남 씨는 동생이 신장 기증을 말리는 가족들에게 "우리 언니를 봐라. 신장 하나 떼주고도 얼마나 건강하냐"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며 "동생은 신념이 곧고, 특히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일에는 한 번 결심하면 흔들림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자매는 신장을 나눠준 뒤에도 장기기증본부의 신장기증·이식인 모임인 '새생명나눔회'에서 활동하며 장기기증 홍보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언니 박씨는 생전 동생이 "신장을 뗀 자리에 다시 신장이 자란다면 몇 번이라도 더 나눠주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자주 말했다고 회상했다.
박옥순 씨는 신장 기증 이후 20년간 별다른 질환 없이 생활했으나, 2019년 위암 3기 진단을 받고 폐까지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 3월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박씨는 건강이 악화하자 가족들에게 "더는 치료를 받지 않고 집에서 편안히 임종을 기다리겠다"며 시신 기증 의사를 밝히고 지난해 12월 경희대 의대에 시신 기증자로 등록했다. 숨지기 하루 전에도 의학 발전을 위해 시신을 써 달라고 재차 당부했다고 한다.
언니 박씨는 "동생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를 비롯해 살아 있는 넷째, 다섯째(동생)도 모두 시신을 기증할 뜻을 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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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