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의 '나비효과'…생활고 못견뎌 쿠바 탈출하는 주민들

2022-05-19 08:22:48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지구 반대편 카리브해 섬나라 쿠바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옛 소련 시절부터 동맹 관계인 러시아의 경제적 지원에 크게 의존해온 쿠바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관광객이 급감하고 식료품과 의약품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민심 이반 현상이 심각하다.

오랜 생활고에 지친 쿠바인들이 보트를 타고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향하면서 우크라이나발(發) 경제난은 쿠바 난민 위기로까지 번지고 있다.


◇ 관광으로 먹고사는데…최대 고객인 러시아 관광객 끊겨
청명한 날씨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쿠바는 손꼽히는 관광 대국 중 하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연간 4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쿠바를 찾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지난해에는 쿠바를 찾는 관광객이 57만5천 명으로 급감했고, 이중 약 25%가 러시아인이었다.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쿠바는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각국의 국경봉쇄가 완화되면 약 250만 명의 해외 관광객이 자국을 찾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러시아와 쿠바를 잇는 항공편이 거의 끊겼기 때문이다.

FT는 "원래 러시아는 이달 쿠바의 휴양지 바라데로에서 열리는 국제 관광축제 기간에 주빈이 될 예정이었지만 서방 제재 여파로 러시아 관광객 수천 명의 예약이 취소됐다"며 "쿠바는 올해 250만 명의 해외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가장 큰 고객을 잃는 바람에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쿠바 관광산업의 가장 큰 고객이면서 오랫동안 미국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어온 쿠바 경제의 막후 조력자이기도 했다.
지난해와 올해는 만성적인 물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쿠바에 식료품과 인도적 지원 물자를 수차례 화물로 보냈다고 FT는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지난 1월 전화 통화를 통해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목이 잡혀 쿠바에 대한 러시아의 투자 약속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지속된 서방의 제재와 관광산업에 직격탄이 된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든든한 버팀목이던 러시아의 지원까지 끊어지면서 쿠바 경제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

쿠바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20∼2021년 -9%를 기록했고, 국제 원자재 가격 폭등과 페소화 하락 등의 영향으로 물가는 세자릿수로 치솟았다고 FT는 전했다.

파벨 비달 전 쿠바 중앙은행 이코노미스트는 FT에 "모스크바에 대한 제재는 아바나를 지원하는 러시아의 능력을 약화하고 있으며 이미 최근 수년간 위기를 겪어온 쿠바의 국제수지에도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난민 위기로 번진 경제난…"작년 10월 이후 10만명 국경 넘어"
갈수록 심각해지는 쿠바의 경제난은 난민 위기로까지 번지고 있다.

FT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후 약 10만 명의 쿠바인이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었다. 이런 수치는 이미 1994년 쿠바 난민 위기 당시의 규모를 넘어서는 것이며 과거 최고였던 1981년 수치에 근접하는 것이다.

CNN도 지난 3월에만 미국-멕시코 국경으로 몰려든 쿠바 난민이 3만2천여 명에 달했다며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식료품·의약품 부족 사태가 쿠바인 대탈출의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어린 아들, 남편과 함께 쿠바를 탈출한 클라우디아(가명)는 CNN에 "아들의 미래를 위해 쿠바를 떠났다"며 "한 달에 50달러를 받고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했으며, 온종일 줄 서서 기다려야 겨우 아들을 먹일 요구르트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1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쿠바 난민 사태가 심각해지자 트럼프 시절 내려졌던 송금·여행 규제를 완화하고 비자 처리를 대폭 늘리는 등 대(對)쿠바 정책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쿠바 가족이 재결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복원하고 영사 서비스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달부터 발급을 시작한 이민 비자도 연간 2만 건 처리를 목표로 신속 발급을 추진하기로 했다.

바이든 정부의 대쿠바 정책은 단지 오바마 정부 시절의 '해빙기'로 돌아가는 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미국은 쿠바 정부가 내부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안전판으로 이민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쿠바에서는 지난해 7월 수십 년 이래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지는 등 경제난으로 인한 민심 이반 현상이 심각하다.

당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독재 타도'와 '자유' 등을 외쳤고, 트위터를 중심으로 '#비바쿠바리브레(자유 쿠바 만세)''#SOS쿠바 등의 해시태그가 확산했다.
한 여성이 "우리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고 외치는 영상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랐다.

뉴욕타임스(NYT)는 아바나 남서부의 산안토니오 데 로스바뇨스 지역에서 시위대가 행진하는 장면이 페이스북에 한 시간가량 생중계됐다가 곧 삭제됐다고 전했다.
북부 연안의 카데르나스와 중부 카마퀘이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공산당 간부와 경찰 차량을 뒤집고 환호했다.

혼란이 이어지자 거리에는 특수부대 차량과 최루탄 스프레이, 곤봉을 든 경찰이 배치됐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이날 축구 중계를 끊고 긴급 송출한 TV 연설에서 "쿠바인들은 미국 정부가 현재 상황의 주요 책임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미국 정부가 배후라고 주장한 지난해 7월 시위 참가자 중 700명 이상이 폭동 선동 등의 이유로 기소됐다. 이는 쿠바 혁명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기소라고 CNN은 지적했다.

FT는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한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더해 코로나19로 쿠바의 주요 수입원인 관광업이 마비되면서 민심이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쿠바에서는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거나 식료품을 얻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게 일상이 됐으며, 2018년 집권한 디아스카넬 정부는 경제 안정을 위해 화폐 개혁 등을 시도했지만 침체에서 벗어나는 데는 실패했다고 FT는 덧붙였다.

passion@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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